망각하는 뇌
[기획 리포트]뇌 속의 인생_ 노년기의 뇌 

내가 나라고 느끼게 하는 뇌의 기억 기능에 문제가 생기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노화의 가장 일반적인 징후인 기억력 감퇴에 관해 살펴본다.

치매와 건망증의 차이

뭔가를 잊어버리는 일이 잦아지면 ‘이거 혹시 치매 아냐?’ 하는 불안감이 살짝 일어난다. 치매와 건망증은 기억을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둘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둘 다 기억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오류에 의한 현상이므로 기억을 저장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건망증과 치매를 구분할 수 있다. 기억은 크게 입력-저장-인출의 세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건망증은 주로 입력의 문제로 인출이 어려워지는 현상으로, 평상시 정보처리를 할 때 그 정보에만 집중하지 않고 다른 과제를 동시에 하거나 생각이나 감정에 휩싸여 정보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다. 반면 치매는 신경세포의 파괴로 인해 저장에 문제가 생긴 경우다. 건망증은 자신이 무엇을 잊어버렸는지 잘 알지만, 치매는 자신의 기억력이 상실되었음을 알지 못한다.

예를 들어, 친구와 약속을 했는데 까맣게 잊고 있다가 친구한테 “왜 늦냐?”고 전화를 받았을 때 “아! 맞아, 오늘 약속했지?”라며 약속한 사실을 기억하면 건망증이다. 그런데 “오늘 보자고 했었나?” 하며 약속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면 치매라고 볼 수 있다.

치매 중 가장 많은 알츠하이머성 치매

치매에 대한 공식적인 정의는 다음과 같다. ‘정상적인 지능의 성인에게 두세 개 이상의 인지 기능들이 저하되는 증후군으로 주로 기억장애가 빈번하다. 또한 인지 저하는 일시적이지 않고 지속되며 대개의 경우 악화된다.’  

치매는 원인에 따라 나뉘는데 알츠하이머성 치매가 50% 정도로 가장 대표적이고, 혈관성 치매가 20~30%, 이밖에 파킨슨성 치매, 알코올성 치매 등이 있다. 먼저 치매 중 발병률이 가장 높은 알츠하이머성 치매에 대해 살펴보자. 알츠하이머 질환은 독일인 의사 알위즈 알츠하이머의 이름을 딴 질병으로 기억, 언어, 동작 같은 정신적 능력을 관장하는 뇌 부위에 문제가 생겨 치매 증상이 일어난다. 주로 60세 이후부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발생 빈도가 점차 증가한다.

알츠하이머 질환에 걸리면 신경세포 안에 과인산화된 타우 단백질이 주성분인 섬유 뭉치(neurofibrillary tangles)가 생긴다. 또한 신경세포 바깥에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주성분인 노인반(senile plague)이 생성된다. 이러한 신경세포의 파괴는 주로 대뇌피질에서  이루어지는데, 이 부위는 인지 및 행동 기능에 관여하는 뇌 부위지만 생명과 직결된 부위나 운동 기능에 중요한 부위의 신경세포들이 파괴되는 것은 아니어서 환자들은 병의 후기까지 운동장애를 겪지 않는다. 알츠하이머를 앓다가 사망에 이르는 기간은 대개 10년 정도이나, 근래 간호의 질이 높아지면서 그 기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그러나 상태가 호전되는 것은 아니다. 대뇌피질세포의 파괴가 계속되기 때문에 증상이 하나둘씩 더 늘고 증세도 더 심화된다.

알츠하이머 초기에는 해마를 포함한 내측 측두엽에서 시작해 두정엽과 전전두엽으로 퍼지고, 결국 감각피질과 운동피질을 제외한 대뇌피질 전반으로 확산된다. 내측 측두엽인 해마가 손상되면 기억장애가 일어나고, 특히 새로운 사실을 학습하는 기능을 상실한다. 외측 측두엽으로 확산되어 베르니케 영역이 손상되면 언어 이해가 어려워지고, 해마 방회(특히 우측)에 도달하면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는 얼굴 실인증이 나타난다. 두정엽의 퇴행이 시작되면 늘 다니던 길도 잃어버리고, 왼쪽 두정엽이 파괴되면 동작 지식이 손상되는 실행증이 나타난다. 전두엽 손상으로 인한 실행증도 있는데 복잡한 행동을 순서화하는 것에 실패하는 증상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떡국을 만들 때 맹물에 떡만 넣고 끓여 내는 식이다. 전전두엽이 퇴행하기 시작하면 고차원적 인지 기능과 사회적 판단력이 저하된다.

혈관성 치매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치매들

치매 중 두 번째로 발병률이 높은 치매인 혈관성 치매는 미세한 뇌졸중이 수차례에 걸쳐 일어나 뇌의 여러 곳에서 혈액 공급이 중단되면서 신경세포들이 파괴되어 발병하는 질환이다. 손상되는 부위가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 대뇌피질이거나 피질하 영역일 경우 혈관성 치매가 발병한다. 뇌졸중으로 인한 인지 행동 손상이 두세 개 이상의 영역에서 관찰될 때 비로소 치매라고 진단한다.

혈관성 치매는 뇌졸중 직후 심하게 인지 저하가 발생한 후 진정되다가 또다시 뇌졸중이 일어나면 악화되는 ‘계단식 퇴행’이 일어난다. 알츠하이머 환자는 점진적으로 인지 기능이 퇴화되어 증상이 나빠지기만 하고 운동장애는 없는 반면, 혈관성 치매는 일반적 뇌졸중과 마찬가지로 혈관이 막히거나 파열된 직후 관련 행동 증상이 최고로 악화되었다가 그 후 어느 정도 회복되는 양상을 보이고, 문제가 된 혈관의 위치에 따라 운동장애가 나타난다. 혈관성 치매의 경우 특히 좌반구에 뇌졸중이 발생하면 우울증의 발생 빈도가 비교적 높다.

춤을 추는 것 같은 몸짓을 하게 되는 헌팅턴 병은 유전적 요인이 가장 강한 치매다. 이 병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다가 40대쯤부터 기저핵 세포들이 퇴행을 시작하면서 발병한다. 기저핵은 운동 조절과 함께 인지 조절을 담당하기 때문에 과장된 움직임뿐만 아니라 인지 기능 저하를 일으킨다.

파킨슨성 치매는 기억장애가 심하지는 않지만 여러 가지 인지 기능 장애가 알츠하이머와 유사해서 변별에 유의해야 한다. 표정이 굳어 있고 보폭이 좁아지거나 손이 떨리기도 하고 동작이 느려지는 운동장애가 일어난다. 흑색질 부분에서 작은 신경세포군을 죽는데, 이는 운동의 정상적인 조절에 필요한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결핍을 초래한다. 파킨슨 질환은 약물 치료로 질환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게 하거나 증세를 최소화할 수 있다.

출처 : 브레인 vol.17
브레인미디어 www.brainmedia.co.kr